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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광박사의 생각하는 간식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이 삶이 되기를 원하는 나를 찾아가는 순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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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26. 21:35 성경으로 먹는 밥

마태복음 13장 7절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마태복음 13장 22절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오늘도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의 씨뿌리는 비유를 하나하나 비교하면서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씨뿌리는 비유는 단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밭 하나하나에 상황이 다 다릅니다. 결실하지 못하는 밭이라는 것입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사단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도록 하여 결실하지 못하고, 돌밭에 떨어진 씨앗은 말씀으로 인한 환난이 오면 넘어집니다. 오늘은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은 어떠한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비교하면서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의 상황을 알아보겠습니다.

 

13: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4:7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8: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세개의 성경을 비교해보면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씨앗은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는데 말씀이 결실을 맺을 수 없도록 가시도 함께 자란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가시가 말씀의 결실하는데 영향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중에 가시가 자랍니다.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 자라는 것입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가시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모든 것들을 막아버립니다. 말씀을 결실하지 못하게 하는 가시는 무엇일까요?

 

다시 세 성경을 비교하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3: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4:18-19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8: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은 말씀을 들었지만 지내는 중에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서 온전히 결실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결실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해 한가지씩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세상의 염려, 이생의 염려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요일 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다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이 아닌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합니다.

 

  1) 육신의 정욕

 

육신의 정욕을 다른 말로 육체의 소욕, 육체의 일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육신을 쫓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합니다.

 

5:16-21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 안목의 정욕

 

안목의 정욕은 보는 것의 욕망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첫 사람인 하와를 유혹할 때에 뱀은 보는 것의 욕망을 부추겼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너희가 살 것이고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실과가 먹음직스럽고 보기에도 좋고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하와가 따먹고 자신이 남편인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하므로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다윗이 있습니다. 그가 나이가 많아져서 전쟁에 나가기에 체력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부하들이 다윗은 왕궁에 있고 자기들만 전쟁에 나갑니다. 하루는 왕궁지붕을 거닐다가 여인의 목욕하는 장면을 보고는 그 여자를 데려와서 자기의 사람으로 만들고 그 남편은 청부살인을 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고난의 대명사로 알려진 욥은 자신이 보는 것의 욕망을 이기기 위해서 자기의 눈과 약속을 해서 처녀를 주목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그 약속대로 지켜 나갔다고 합니다.

 

31:1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3) 이생의 자랑

 

여기에서 자랑의 헬라어로는 알라조네이아라는 말로 그 뜻은 없는 것을 마치 있는 것처럼 보이려는 헛되고 허무맹랑한 과장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생의 자랑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 속에서 자신이 소유한 것을 마치 영원한 것인 것처럼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허영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남유다를 멸망시키고 바벨론을 제국으로 만들었던 왕이 느부갓네살왕입니다. 이 왕이 하루는 자신의 성에서 바벨론 제국을 바라보니 자신이 이룩했다고 하는 강

한 자부심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니엘서 4장에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4:30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 왕을 왕궁에서 쫓아내고 들짐승과 함께 칠년을 지내도록 하였습니다.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으며 이것을 추구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둘째로 재물의 유혹입니다.

 

재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얻을 능력을 주었다고 합니다

 

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실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었습니다.

 

12:35-36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나올 때 자신들의 주인이었던 애굽 사람들에게 은금패물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믿고 애굽 사람에게 요구한 사람은 요구하는대로 다 받아서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물이 주어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도착하여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서 내려오는 것이 더디자 그들의 은금패물을 모아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들이 섬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처럼 재물은 모으면 모을수록 계속 모으려고 하고 재물을 섬기려고 합니다. 여기에서 탐심이 생깁니다.

 

12:15~21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얻는 능을 주셨고 또한 재물을 모으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12장에서는 재물을 모으기는 모으되 자기만을 위해서 쌓아두지 말고 하나님께 대하여도 풍족하게 쌓아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 자기를 위하여는 재물을 쌓아두지만 하나님께 대하여는 인색한 자를 탐심을 가진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금송아지에게 절하며 우리를 애굽으로 인도할 신이라고 했던 것처럼 탐심또한 이런 우상숭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3:5-6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그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말라고 합니다.

 

6:19-24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가시떨기에 뿌리워진 씨앗은 결실하지 못합니다. 가시가 같이 자라면서 우리의 삶에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이 생기고 이생의 자랑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우리로 결실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데 결실을 맺지 못하도록 하는 가시인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대해 알았으니 이러한 것을 물리치고 승리하시므로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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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19. 17:00 성경으로 먹는 밥

본문 : 마태복음 135-6

씨뿌리는 비유에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8:11)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3:5-6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13:20-21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흙이 깊지 않아서 싹이 나오기는 하나 해가 돋은 후에는 타서 말라버렸다고 합니다. 이것을 1320절과 21절에서는 말씀을 기쁨으로 받기는 하였으나 뿌리가 없어서 잠시 견디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말씀을 듣고 깨달아 은혜받은 기쁨을 누리지만 그 은혜가 얼마가지 못하고 말씀대로 은혜받은 대로 믿음의 삶을 살려고 하지만 그 말씀으로 인해 오는 어려움으로 인해 넘어지는 자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15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며 홍해를 건너게 하고 하나님이 보낸 사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앞을 인도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당하는 것은 사흘길을 걸었지만 물이 없는 마라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된 우리를 좋은 길로만 인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처럼 말씀으로 인한 환난이 있다는 것이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고난과 환난이 반드시 있습니다. 로마서 8장말씀을 보겠습니다.

8:15-18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상속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이기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으려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믿는 우리가 고난이나 환난을 받아야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3:28-30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실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그들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이끌어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심이니라"

우리의 영혼에 생명의 빛을 비추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한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살후1:4-5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환난은 우리를 연단하여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우리로 칭찬과 영광과 존귀함을 얻게 한다는 것입니다.

벧전1:6-7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환난이나 고난으로 인해 우리의 믿음이 굳건해지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할 때에 반드시 환난이나 고난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겨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천국이 있다고 합니다.

5:10-12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2:8-11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고난이나 환난을 견딜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닌 하나님 주시는 힘으로 가능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은 감당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혹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당하게 되더라도 피할 길을 주시고 능히 그 시험을 이기도록 도와주신다고 합니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비록 자신이 현재 고난을 받는 것으로 인해 돌밭에 뿌리워진 씨앗이라 생각할찌라도 고난과 환난이 올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능히이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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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30. 11:26 성경으로 먹는 밥

그것은 우리가 말씀을 들었는데도 깨닫지 못할 때 우리가 가지고 있던 말씀을 빼앗겨 버린다고 합니다 

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성경은 우리가 말씀을 깨닫지 못할 때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을 말씀을 들을 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8: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 몰라서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듣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의 의미를 몰라서가 아니라 못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듣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듣지 않는지 그 이유를 성경을 통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듣는 사람이 마음을 상했기 때문에 듣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의 애굽에서의 노예생활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고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신음하는 소리를 듣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했던 약속을 기억했다고 합니다.

6:4-5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노예로서 고통받고 있는 너희를 해방시키고 너희 조상에게 약속한 땅으로 인도하겠다고 다시 한번 약속을 합니다.

6:6~8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노예에서 해방시켜 줄 뿐만 아니라 조상들에게 약속한 땅으로 인도해서 그 땅을 기업으로 삼게 해주겠다는 약속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약속이 주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약속의 말씀을 새겨듣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6:9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모세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마음이 상하고 또한 중노동으로 인해 듣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이 상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듣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상하면 아무리 좋은 약속을 한다고 해도 그 말은 거저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내보내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약속으로 들릴 뿐입니다.

 

둘째는, 믿지 못해서라고 합니다.

 

6: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먼저 배에 태워 건너편으로 건너가게 하시고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는 것을 보고 배를 바다로 몰고 나갑니다. 그러다가 해질 때쯤부터 불기 시작한 바람으로 새벽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그들이 바람으로 인해 고생하며 노를 젓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바다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는 처음에 유령이라고 하며 무서워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니 안심하라고 하시면서 그들을 안심시키고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것을 두고 성경은 그들이 왜 이렇게 바다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보지 못하고 유령으로 봤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 사건이 있기 전에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신 사건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그 마음이 둔하여 져서 깨닫지 못하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듣지 못하게 하십니다.

 

29:9-12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리니라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그것을 글아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이 봉해졌으니 나는 못읽겠노라 할 것이요 또 그 책을 글 모르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글을 모른다 할 것이니라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를 덮고 우리의 눈을 가려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지도 깨달아 지지도 않게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 그러지 않으신다고 들었는데 이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부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사랑하시는 자에게 이렇게까지 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다음 구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29:13-14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를 믿는 다고 입으로는 떠들어대고 하나님 사랑합니다라고 하며 찬양도 하고 기뻐 춤추기도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났다는 것입니다. , 행동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는 표현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이 사람의 눈치를 보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전통과 실세를 쫓아가는 삶을 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좋은 밭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밭을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어 죽게하시고 우리를 살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씀을 듣기는 듣지만 마음에 새겨듣지 못하여 깨닫지 못하고 결국에는 우리에게 뿌려진 씨앗을 사탄에게 빼앗겨버리는 불행한 일을 자초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마음이 상할 때 어떻게 해야하나?, 또한 내 마음에 말씀이 믿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내가 입으로만 하나님을 섬긴다고 사랑한다고 하고 있지 않는지를 늘 생각하며 말씀을 들어도 깨달아지지 않는다면 어디서 말씀을 빼앗겼는지는 묵상하고 다시 말씀을 깨달아 많은 열매를 맺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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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두광박사의 생각하는 간식
2016. 8. 13. 19:18 성경으로 먹는 밥

13: 3-9   길 가에 떨어진 씨앗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목수이시지만 당시에 이스라엘의 농사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이스라엘의 농사법은 우리와 조금 다른데 우리나라는 밭을 갈고 나서 씨를 뿌리지만 이스라엘은 반대로 씨를 뿌리고 나서 밭을 갑니다. 그러다 보니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뿌리는 씨가 여러 곳으로 뿌려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뿌려지는 여러 가지의 경우 중에서 길가에 뿌려진 씨앗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먼저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13장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3:3-4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4:3-4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8:4-5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예수님께서 군중들이 있는 곳에서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서는 씨앗을 뿌렸고 그것이 길가에 떨어지니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다고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비유를 풀어주는 내용은 우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데 한군데만 보게 되면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세책을 비교하며 말씀을 읽게 되면 길가에 뿌리운 씨앗 비유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8: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4:14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즉 뿌리는 자는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뿌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뿌려진 씨앗을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파종할 때에는 먼저 씨를 뿌리고 지나가면 씨가 잘 보존될 수 있도록 그 위에 흙을 살짝 덮어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흙으로 덮지 못해서 외부에 노출되는데 이러한 씨를 새들이 와서 먹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새들이 와서 먹는 다는 표현을 우리 마음에서는 빼앗는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 비유를 풀며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새들을 악한 자라고 표현하며 그들이 우리의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버린다고 합니다.

 

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그리고 마가복음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사탄이 와서 빼앗아버린다고 하고요

 

4:14-15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누가복음에서는 마귀가 와서 먹어버렸다고 합니다.

 

8:11~12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이렇게 먹어버렸다고 하는 표현을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남아있지 않고 빼앗겨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듣는 말씀들이 다 마음에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빼앗겨버려 없어질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왜 우리에게서 말씀을 빼앗아버린다고 합니까? 그것은 우리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하려고 빼앗아 버린다고 합니다.

 

8: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우리의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아버리는 이유가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아서 구원함을 받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천국에 이르는 영혼의 구원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교회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귀는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다니며 우리가 영혼의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은 우리로 영혼의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씨뿌리는 비유는 단순히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고 적게 맺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보다 더 심각한 우리 영혼의 구원 문제와 직결되는 비유인 것입니다. 말씀을 빼앗기므로 구원을 일루지 못하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러면 사탄이 우리에게서 말씀을 빼앗아 간다고 했는데 우리가 말씀을 빼앗길 때가 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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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12. 21:08 성경으로 먹는 밥

잠언 37-8절 여호와를 경외하라

 

 

3:7-8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경외라고 하는 말은 여러 가지의 뜻이 있겠지만 흔히 쓰는 것은 두렵고 떨림으로 섬긴다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면 경외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한다고 하는 것은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신명기 624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규례를 지키라고 명령하시면서 그 이유를 하나님을 경외하여 항상 복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십니다.

 

6:24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호렙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준 것이 있는데 곧 십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십계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은 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게 하고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라는 것입니다.

 

4:10 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리라 하시매

 

이로 보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라고 하는 말씀은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모든 백성들 즉 백성의 남녀, 어린이, 그리고 백성과 함께 거하는 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든 율법을 지켜 행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말씀을 알지 못하는 자녀들에게 들려주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게 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31:11-13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가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에게 듣게 할지니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 거주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그러면 경외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신명기 10장과 11장의 말씀을 비교해보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10: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1:13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즉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여호와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위의 말씀들을 종합해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고 하는 말씀은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이며 이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22:34-40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래서 율법사가 모든 율법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을 물어보았을 때 예수님의 대답은 모든 십계명을 두 가지로 요약하였는데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시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즉 자신의 뜻을 따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신이 생각할 때에는 자기가 최고인 줄 알지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오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자신이 최고라고 하면서 스스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하지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을 떠난다고 하는 말씀은 예레미야219절을 보면 이라고 하는 말을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그 속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2: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말씀대로 살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을 떠나는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본문 8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우리 몸의 양약이 되어서 골수를 윤택하게 한다고 합니다. , 육신의 강건한 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의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지혜롭게 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악을 떠나는 생활이며, 이것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에 강건한 복을 허락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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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3. 22:23 성경으로 먹는 밥

잠언36절 여호와를 인정하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3:6)

본문에 나오는 인정하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야다라는 말로 충분히 인지하는 것을 가르키는데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으로 믿고 고백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범사에 그를 인정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주관하고 이루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26:17 “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이 말씀은 하나님을 그 자체로 인정하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보인 사건으로 모세의 출애굽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요셉의 인도로 야곱을 위시한 그 가족70여명이 애굽으로 이사를 합니다. 그리고 요셉이 총리로 있는 시절과 요셉을 아는 사람들이 생존해 있을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조금 편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일어나고 부터는 그들이 애굽의 노예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생활이 아주 비참하고 고되어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 탄식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람을 보냅니다. 그가 바로 모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떨기나무에서 부르시고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바로 앞에 서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10가지 재앙을 통하여 철저하게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고 알게 합니다. 그러자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쫓아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모든 것을 챙겨서 드디어 해방된 민족으로서의 첫발을 내딛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나오자 마자 마주하게 된 것이 건널 수 없는 홍해였습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애굽의 바로가 정신을 차리고 그들이 자랑하는 전차 육백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 뒤까지 따라오는 절대 절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 두려워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하였는데

 

14:11-12 “그들의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이들의 원망은 아주 구체적이었습니다. 애굽에 그냥 두었으면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가 이들에게 말을 합니다.

 

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라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그러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다 위로 손을 내밀자 하나님께서 큰 동풍을 보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다가운데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좌우에 벽이 되어 모두 홍해를 건너는 기적을 보게 됩니다.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에 대해서 히브히서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리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라고 하며 하나님이 계신 것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1129절에서는 그러한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1: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이렇게 하나님을 하나님 자체로 인정한 사건을 한 가지 더 본다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백세에 얻은 자녀였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아들이 자라서 20대 청년이 되었을 때는 아브라함이 그를 볼 때마다 흐뭇하고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하나님께서 느닷없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 무슨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다고 약속하셨고 자신의 나이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못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네게 후손을 줄 것이라고 하며 이삭을 100세에 주어서 잘 기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이를 번제로 바치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하나님은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지체하지 않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하나님이 일러 주신 곳으로 갔다고 합니다. 저 같으면 이러한 명령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고 마귀의 속삭임이라고, 하나님이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며 아니라고 아니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러지 않고 지체함 없이 아들을 번제로 드려야하는 먼 길을 갔습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성경은 아브라함이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은 죽은 사람도 다시 살릴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생명의 주관자로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에 새벽미명에 출발할 수 있었던 것도, 삼일간을 가면서도 주저함이 없었던 것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리실 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즉 믿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경 요한1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4: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하며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신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다 이루어주신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성경의 믿음의 선진들은 이것을 믿었기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의 길을 가므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어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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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5절 여호와를 신뢰하라

 

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개정개역 성경에는 여호와를 신뢰하고라고 하였지만, 개역한글 성경에는 여호와를 의뢰하고라고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이 신뢰라는 말과 의뢰라는 말은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로 삶의 모든 영역을 온전히 맡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라고 하는 말씀은 온 마음을 다하여 삶의 모든 영역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삶의 모든 영역을 온전히 맡길 수 있을까요? 그것이 가능할까요? 성경은 가능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모든 것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긴 사람들에 대해서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20장에 보면 여호사밧이라는 왕이 나옵니다. 그는 유다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위기의 상황에 놓였습니다. 20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대하20:1-2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하니

 

3개국의 왕들이 유다를 치기 위해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향해 진격하고 있는데, 벌써 엔게디까지 왔다고 다급하게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엔게디까지는 50km정도의 거리입니다. 제주도로 이야기하면 화순에서 제주공항까지의 거리정도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즉 하루면 당도하는 거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급한 보고를 받고 또한 상황이 급박하게 되었는데 여호사밧 왕의 조치를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합니다. 군사들을 모아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 가운데 서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보통의 왕이면 적이 하룻길까지 왔으면 군대를 소집하고 성을 방어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일 것인데 여호사밧은 그것이 아니라 먼저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전쟁을 하는데 전날보다 더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그것을 20절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대하20:20-21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적군을 마주대하여 나가는데 잘 훈련된 군사를 먼저 앞에 세운 것이 아니라 오늘날로 치면 찬양대가운을 입히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를 먼저 세웁니다. 여기서도 전쟁이라는 상식과는 너무도 다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더 놀라운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하20:22-24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의 서로 쳐죽였더라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하여 싸워주시고 복병을 두어서 치게하고 궁극적으로는 3국연합군이 스스로 괴멸하도록 만들어버리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였습니다. 여호사밧왕의 여호와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주셨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75~6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7:5-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이 말씀을 보면 여호와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 즉,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경고하고 있으며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불행 속에 살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떠난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떠났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저주를 받는 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면 5절 하반절에 자기의 명철을 의지하는 자입니다. ,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문가로서의 지식과 평생을 쌓아온 경험, 그리고 자기가 쌓아올린 명예 등을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좋은 것이 와도 보지 못하고 불안과 걱정을 많이 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 구절을 보면 다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7:7-8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마음이 떠난 사람과 의뢰하는 사람의 차이를 극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5절에서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 여호와를 신뢰하는 행위는 행동으로 나타나기 이전에 마음이 먼저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263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주를 신뢰하는 사람에게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평강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과 삶에서 아무 분쟁이 없이 평온한 상태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은 마음으로든 생활로든 염려할 일이 생겨도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평온한 상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편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로 시작하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3:1-2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하지만 이러한 고백들이 구약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러한 믿음을 고백하기를 원하며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4장에 보게 되면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대해서 구하라고 하십니다. 염려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하등 영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염려하지 말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구하는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바로 응답을 주시겠다가 아니고 하나님의 평강을 먼저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의 기도의 모습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았듯이 우리가 가진 경험이나 지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함에 있어 하나님 자신을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마음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평강을 주시고 적을 이기든지 생활이 풍성해지든지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서 여호사밧처럼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시도록 우리를 내어드리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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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두광박사의 생각하는 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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